와이즐리 초창기에는 공동 창업자들이 고객 문의에 직접 응대했다. 인력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면서 면도날을 어떻게 끼우냐는 문의를 꽤 많이 받았다. 면도날 교체 방법은 다른 면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의아했다. 분명 수많은 면도기를 써 보셨을 텐데, 왜 면도날 끼우기가 어려우셨을까?
채팅상담으로 면도날 교체 방법을 물어본 고객에게 더 자세히 알려 드리고자 면도날 결합 과정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그때 문득 알게 되었다. 당시 와이즐리의 면도날 케이스는 위아래 구분 없이 양방향으로 슬라이드되는 형태였다. 면도날은 한쪽으로만 결합되는데 말이다. 찍은 영상을 돌려보니 개발자인 나조차 방향을 헷갈리고 있었다. 면도날 케이스 디자인이 직관적이지 못한 탓이었고, 고객 경험을 깊게 고민하지 못한 우리 탓이었다.
4. “저렴한 느낌이 나요”
다양한 피드백을 들어봤지만 지금도 가장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이다. 저렴한 느낌의 원인부터 파헤쳐 이유를 찾아야 했는데, 문제는 이 과정이 굉장히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가설이 너무 많았다. 생긴 게 별로인가? 재질이 별로인가? 가격이 낮으니 심리적으로 저렴해 보이는 걸까?
그러던 중 면도기를 화장실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박살이 났다는 고객들 문의에 주의를 기울였다. 당시 와이즐리 면도기 손잡이의 주 재질은 고무와 플라스틱이었는데, 바닥에 떨어지면 면도날이 분리되거나 연결 부분이 부서지곤 했다. 신뢰도가 부서지는 순간이었기에 고객의 우연한 실수도 버틸 수 있는 내구성이 필요했다. 고급스러워 보이면서도 튼튼한 소재로 신뢰도의 빈틈을 채워야 했다.
와이즐리는 고객들의 면도 경험을 개선할 종합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기능, 소재, 직관성, 신뢰도 등을 모두 고려해서 실물 제품으로 탄생시켜야 했다. 이제부터는 디자이너의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었다. 디자인으로 고객 경험을 개선하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디자인 회사, Aruliden
우리는 최고의 디자인을 함께 만들 디자인 회사를 찾기 시작했다. 몇 주 동안 전 세계를 뒤졌다. 그렇게 찾은 Aruliden(아룰리덴)은 와이즐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가장 잘 이해하는 곳이었다. 더 좋은 고객 경험에 집착하고 디자인을 통해 사용자 불편을 해소한다는 그들의 디자인 원칙은 우리와 통하는 데가 많았다.
물론 그들의 포트폴리오도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구글, 마크제이콥스, MoMA와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할 만큼 뛰어난 역량을 가진 회사였다. 그만큼 뛰어난 곳이기에 억 단위의 프로젝트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우리는 고객 경험을 위해 큰 투자를 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