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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와이즐리


우당탕탕 채용공고 작성 대작전


4가지 문제를 풀며 얻은 콘텐츠 제작 교훈

* 와이즐리 콘텐츠 마케터 전윤아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



콘텐츠 마케터로 살아남기. 20%는 실력 80%는 운이다. 내가 만든 콘텐츠가 빵빵 터지는 운도 운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좋은 회사를 고르는 운이다.


콘텐츠의 가치를 아는 C레벨, 소재를 적극 제공해 주는 동료들,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 수 있도록 투명하게 소통하는 조직. 체감상 이 3가지가 갖춰진 좋은 회사여야 신나게 일할 수 있다. 콘텐츠 만드는 게 신나는 일이 되어야 멋진 결과가 따를 운도 높아지더라.


그런데 이 3가지를 갖춘 회사는 정말 드물다. 그걸 아니까 우리 회사에서 일하게 된 건 운이 참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 운을 실력으로 완성하고 싶어서 덕질 하듯이 콘텐츠를 만든다. 회사가 가지고 있는 멋진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내 역할이다. 지난주 공개된 채용공고가 그 역할을 수행한 대표적인 프로젝트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이렇게 수정이 많았던 콘텐츠는 내 커리어에서 처음이었다. 프로젝트를 되짚어보며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이 날아가지 않도록 정리해두려 한다.



운수 좋은 나…?


지난 5월, COO 영표님이 ED(Experience Design)팀 리드 명근님과 나를 소환했다.


"저는 아주 잘 만들어진 채용공고가 우리 채용의 핵심 무기가 될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Culture deck처럼 한국의 스타트업 씬에서 회자되고 바이럴을 탈 수 있는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이런 초대 메일을 보고 설레지 않는 콘텐츠 마케터는 없을 거다. 채용공고 리뉴얼 스쿼드의 시작이었다. 회사 덕질의 끝판왕 채용공고, 중요하고 재밌는 일을 할 수 있겠다 싶어 신이 났다.


영표님은 무슨 일이든 그냥 하지 않는다. 좋은 채용공고를 만들고 싶다면, 좋은 채용공고에 대한 정의와 그에 도달할 원칙부터 정리해오는 분이다. 이번 채용공고는 우리 회사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여야 하고, 우리와 잘 맞을 분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져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내용을 날카롭고 투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원칙. 컨셉도 함께 잡아오셨는데 전반적으로 모두 좋아서 하하호호 킥오프 미팅이 끝났다.


그땐 몰랐다. 이 채용공고 완성에 2달이 걸릴 줄. 13번의 회의, 어마무시한 피드백, 4번의 전체 수정이 기다리고 있을 줄.



문제 1. 이전 버전을 레퍼런스로 참고했다


영표님의 원칙을 바탕으로로 채용공고에 들어갈 내용을 정리하고, 몇 가지 콘텐츠 형태를 잡아 피드백 받았다. 목적도 컨셉도 명확한 덕에 3명이서 금방 합의를 마쳤다. 보통 이 단계가 무사히 끝나면 콘텐츠가 잘 나온다. 뚝딱뚝딱 첫 번째 초고를 써 나갔다. 이전 버전의 채용공고를 들어가야 할 내용의 레퍼런스로 참고했다.


나름 자신 있게 쓴 초고였지만, 영표님은 우리가 강조해야 할 회사의 매력이 잘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는 의견을 건넸다. 지난 채용공고는 작년에 작성된 것이었고 그새 회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연봉 정책이, 외부적으로는 제품 가격 정책이 바뀌었다. 정책이 바뀐 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그 방향을 예비 지원자에게 알리는 것이 이번 채용공고 리뉴얼의 목적이기도 했다.


내용을 갈아엎는 혁신이 필요했다. 최근의 지원자들이 우리 회사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껴 지원하게 됐는지 이해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우리가 하고 싶은, 해야 할 이야기를 정리하기 위해 영표님의 도움을 받았다. 영표님과 1시간 넘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회사의 철학을 전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도 요청했다. 이들을 반영해 두 번째 초고가 나왔다.



문제 2. AB테스트로 합의할 영역이 아니었다


두 번째 초고도 영표님을 통과하지 못했다. 예비 지원자들이 매력을 느낄 우리의 강점을 명확히 드러내지 못한다는 거였다. 콘텐츠의 흐름 때문일까? 우리의 최고 장점은 모든 팀원에게 높은 자율과 책임이 주어지기에 스스로 성장하며 문제 해결력을 기를 수 있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시장 최고의 보상도 빼놓을 수 없는 강조 포인트였다. 일이 많고 힘든 건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단점이지만.


이 장점들을 부각하는 채용공고를 만들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다고 생각했다.


1) ‘생활 소비재 시장을 소비자에게 유리하도록 혁신한다'는 비전을 설명하고 → 비전을 이루는 동안 팀원들이 달성할 성장을 명시하는 것.


2) 우리 회사는 성장을 원하는 팀원들이 문제 해결력을 기르기에 최적의 공간이라는 걸 시작부터 강조하고 → 왜 그런지 근거를 이야기하며 회사를 소개하는 것.


어떤 흐름이 더 좋을지 알아보기 위해 빠르게 초안을 잡아 내부 팀원 대상으로 AB테스트를 진행했다. 7:3으로 A안이 우세했지만 이유와 근거가 예상보다 다양했다. A안은 너무 길어서 읽다 말았어요, B안은 메인카피가 별로라 A안을 골랐어요, B안은 너무 우리의 성장에만 집중해 회사의 매력이 덜 드러나요, 전반적으로 일이 힘들다는 표현이 너무 강조되어서 예비 지원자가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 등등. 좋아, A안을 바탕으로 피드백을 반영하면 되겠지!


영표님과 명근님에게 테스트 결과를 공유하고 세 번째 초안을 작성했다. 명근님의 디자인 프로토타입으로 확인하는 3번째 초안은 내가 봐도 멋있었다. 이게 마지막 초안인 줄 알았다.


기쁜 마음에 영표님이 찬물을 끼얹었다. 이 채용공고가 정말 우리의 최선이냐고. 회사 이름을 바꿔도 알아보지 못할 채용공고 아니냐고. AB테스트에서 얻은 피드백 대부분을 반영한 게 원인이었다. 모두의 취향이 들어가니 표현이 둥글어졌다. 우리 회사만의 매력이 뾰족하게 드러나지 못했다.



문제 3. 피드백은 더 빠르고 촘촘히 받아야 했다


5월 말에 시작된 프로젝트가 6월이 가도록 끝나지 않았다. 영표님의 일정 압박은 둘째 치고, 나 자신부터 납득할 수 없는 작업 현황이었다. 글 쓰는 마케터라고, 긴 글 쓰기는 나름 자신이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초고만 3번을 다시 썼다. 이대로라면 다음 초고도 엎어지지 않을 거라 확신할 수 없었다. 3번째 초고가 엎어진 다음, 밤늦게까지 문서 하나를 정리했다. 문서 제목은 ‘더 이상 늦어질 수 없다, 채용공고’. 채용공고가 자꾸 엎어지는 이유를 하나하나 따져보았다.


가장 큰 문제는 채용공고의 흐름이 구체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혼자 초고를 작성한 것이었다. 채용공고에서 해야 할 이야기는 정해졌지만, 그 이야기마다 어떤 소제목을 달고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는 작성 전 의견을 구하지 않았다.


여태 써온 블로그 글은 그렇게 해도 괜찮았다. 목적과 주제가 뚜렷하면 풀어내는 방식이야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건 채용공고다. 한 문장, 한 단어가 우리를 드러낼 소중한 기회다. 문단 단위로 들어갈 내용과 방향을 명확히 한 다음 써야 했다.


작업이 제대로 진전되지 않은 건 내 잘못이 컸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고 피드백을 많이 받지 않아서였다. 영표님과 명근님에게 양해를 구했다. 더 빠른 작업을 위해 두 분에게 새롭게 제안한 작업 방식은 이랬다.


1. 스쿼드를 시작할 때 영표님이 전달한 ‘채용공고 만들기’ 문서를 다시 정독한다.

2. 우리 채용공고의 목적에 맞게 컨셉을 정한다.

3. 컨셉에 맞게 파트마다 들어갈 내용을 정한다.

4. 3에 벗어나지 않도록 쓴다.

 a. 이때 키 카피를 먼저 쓰고, 들어갈 내용을 잡아 셋이서 확정한 후

 b. 키 카피에 이어질 본문을 쓴다.

5. 키 카피와 문장을 다듬는다.

6. 완성.


*가장 중요! 모든 단계에서 피드백을 요청해 의견 교환 텀을 짧게 가져간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영표님에게 초고의 최종 단계에서만 피드백을 요청한 게 문제였다. 영표님과 함께하는 첫 협업이라 적절한 피드백 빈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C레벨의 피드백이라니 부담스러움이 숨어 있었을 거다. 치과 가기 무서워하는 마음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이 나이 먹고 부끄러운 일이다.


자기반성으로 가득한 문서를 영표님에게 공유하는 순간에도 무시무시한 피드백을 걱정했는데, 영표님은 프로젝트 기간 중에 리뷰 과정이 있어서 좋다며 컨셉과 방향성, 전략을 확실히 잡아보자는 의견을 전해주셨다.



문제 4. 내 맘대로 한계를 만들지 말아야 했다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동안 명근님에게 가장 미안했다. 매 초고마다 멋진 디자인을 입혀 준 명근님, 진척이 없는 건 내가 쓴 초고 때문이라 답답할 법도 했는데 명근님은 그저 응원을 건네주실 뿐이었다. 콘텐츠 마케터니까 콘텐츠 흐름을 내가 리드해야 한다는 욕심에 일을 그르쳤다.


네 번째 초고는 시작부터 명근님과 함께했다. 채용공고 컨셉을 같이 정하고, 그 컨셉에 맞게 흐름을 정한 후 디자인과 텍스트 작성을 각각 진행하며 합을 맞추는 방식이었다. 명근님께서는 반전 매력이라는 컨셉을 뚝딱 제안해주셨다. 최고의 고객 경험을 만드는 우리들의 멋진 비전, 하지만 그 뒤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하는 우리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대조해 보여줘 강렬한 인상을 남기자는 것이었다. 바로 이거네요, 영표님도 나도 박수를 쳤다. 역시 명근님은 내가 아는 디자이너 중에 가장 뛰어난 분이고, 좋은 경험을 만들기 위한 디자인을 하는 분이었다. 진작 이런 방식으로 작업했으면 될 문제였다.


컨셉이 좋으니 카피도 뚝딱 나왔다. 고객의 10배 좋은 일상을 만들기 위해, 10배 치열하게 일하는 우리들. 다만 여느 회사의 채용공고와 비슷해 보이지 않도록 우리만의 비전을 상세히 묘사하기로 했다. 표현도 더욱 뾰족하고 솔직하게. ‘워라밸이 좋지 않다는 걸 말해주자'는 의견도 영표님과 명근님에게서 먼저 나왔다.


일반적으로 채용공고는 회사의 멋진 점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멋져 보여야 지원하고 싶어질 테니까. 그래서 나는 지난 3번의 초고에서 멋지고 둥근 표현을 골라 썼다. 이를테면 워라밸 문제는 ‘성장하는 스타트업이기에 업무 강도가 높다'는 식으로 다듬었는데, 내 맘대로 채용공고는 이래야 한다며 한계를 설정해두었던 거다.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던 한계를 나 혼자서.



태풍이 지나가고: 괜찮은 것은 대단한 것이 될 수 없다


7월 4일 월요일. 드디어 채용공고가 공개되었다. 채용공고 리뉴얼 스쿼드가 시작되고 6주, ‘더 이상 늦어질 수 없다, 채용공고' 문서를 만들고 2주가 지난 날이었다. 채용공고야 앞으로도 계속 다듬어가겠지만 ‘끝났다!’ 는 해방감 최고. 늦도록 글을 다듬고, 걱정에 잠을 설치던 날들이 지나갔다.


솔직히. 나는 내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는 콘텐츠 마케터로서 우리 회사 이야기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자만심이 약간 섞여 있었을 그 자부심 때문에 이번 프로젝트가 늘어졌다. 채용공고니까 누가 봐도 좋은 회사로 보이게 써야지, 워라밸이 나쁘다는 건 둥글둥글한 표현으로 순화해야지. 지금처럼 ‘솔직히 말하면 워라밸, 좋은 복지는 없습니다.’ 라는 말을 써도 될 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돌아보니 내가 잘 쓰는 글은 일반적인 글이었다. ‘이런 글은 이렇게' 가 정해져 있는 글은 빠르고 깔끔하게 잘 쓴다. 괜찮은 콘텐츠 마케터로 남고 싶다면 그 정도로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이라면 대단한 콘텐츠 마케터가 될 수 없다.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 콘텐츠가 전해져야 할 대상을 깊이 고민하고, 일반적인 독자가 아니라 그들에게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콘텐츠의 분량, 표현 방식은 대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괜찮은 콘텐츠 마케터 말고, 대단한 콘텐츠 마케터가 되자. 고이지 말자.



그렇게 완성된 채용공고가 궁금하시다면?


팀 와이즐리


우당탕탕 채용공고 작성 대작전



4가지 문제를 풀며 얻은 콘텐츠 제작 교훈

* 와이즐리 콘텐츠 마케터 전윤아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




콘텐츠 마케터로 살아남기. 20%는 실력 80%는 운이다. 내가 만든 콘텐츠가 빵빵 터지는 운도 운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좋은 회사를 고르는 운이다.


콘텐츠의 가치를 아는 C레벨, 소재를 적극 제공해 주는 동료들,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 수 있도록 투명하게 소통하는 조직. 체감상 이 3가지가 갖춰진 좋은 회사여야 신나게 일할 수 있다. 콘텐츠 만드는 게 신나는 일이 되어야 멋진 결과가 따를 운도 높아지더라.


그런데 이 3가지를 갖춘 회사는 정말 드물다. 그걸 아니까 우리 회사에서 일하게 된 건 운이 참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 운을 실력으로 완성하고 싶어서 덕질 하듯이 콘텐츠를 만든다. 회사가 가지고 있는 멋진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내 역할이다. 지난주 공개된 채용공고가 그 역할을 수행한 대표적인 프로젝트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이렇게 수정이 많았던 콘텐츠는 내 커리어에서 처음이었다. 프로젝트를 되짚어보며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이 날아가지 않도록 정리해두려 한다.




운수 좋은 나…?


지난 5월, COO 영표님이 ED(Experience Design)팀 리드 명근님과 나를 소환했다.


"저는 아주 잘 만들어진 채용공고가 우리 채용의 핵심 무기가 될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Culture deck처럼 한국의 스타트업 씬에서 회자되고 바이럴을 탈 수 있는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이런 초대 메일을 보고 설레지 않는 콘텐츠 마케터는 없을 거다. 채용공고 리뉴얼 스쿼드의 시작이었다. 회사 덕질의 끝판왕 채용공고, 중요하고 재밌는 일을 할 수 있겠다 싶어 신이 났다.


영표님은 무슨 일이든 그냥 하지 않는다. 좋은 채용공고를 만들고 싶다면, 좋은 채용공고에 대한 정의와 그에 도달할 원칙부터 정리해오는 분이다. 이번 채용공고는 우리 회사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여야 하고, 우리와 잘 맞을 분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져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내용을 날카롭고 투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원칙. 컨셉도 함께 잡아오셨는데 전반적으로 모두 좋아서 하하호호 킥오프 미팅이 끝났다.


그땐 몰랐다. 이 채용공고 완성에 2달이 걸릴 줄. 13번의 회의, 어마무시한 피드백, 4번의 전체 수정이 기다리고 있을 줄.




문제 1. 이전 버전을 레퍼런스로 참고했다


영표님의 원칙을 바탕으로로 채용공고에 들어갈 내용을 정리하고, 몇 가지 콘텐츠 형태를 잡아 피드백 받았다. 목적도 컨셉도 명확한 덕에 3명이서 금방 합의를 마쳤다. 보통 이 단계가 무사히 끝나면 콘텐츠가 잘 나온다. 뚝딱뚝딱 첫 번째 초고를 써 나갔다. 이전 버전의 채용공고를 들어가야 할 내용의 레퍼런스로 참고했다.


나름 자신 있게 쓴 초고였지만, 영표님은 우리가 강조해야 할 회사의 매력이 잘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는 의견을 건넸다. 지난 채용공고는 작년에 작성된 것이었고 그새 회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연봉 정책이, 외부적으로는 제품 가격 정책이 바뀌었다. 정책이 바뀐 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그 방향을 예비 지원자에게 알리는 것이 이번 채용공고 리뉴얼의 목적이기도 했다.


내용을 갈아엎는 혁신이 필요했다. 최근의 지원자들이 우리 회사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껴 지원하게 됐는지 이해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우리가 하고 싶은, 해야 할 이야기를 정리하기 위해 영표님의 도움을 받았다. 영표님과 1시간 넘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회사의 철학을 전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도 요청했다. 이들을 반영해 두 번째 초고가 나왔다.




문제 2. AB테스트로 합의할 영역이 아니었다


두 번째 초고도 영표님을 통과하지 못했다. 예비 지원자들이 매력을 느낄 우리의 강점을 명확히 드러내지 못한다는 거였다. 콘텐츠의 흐름 때문일까? 우리의 최고 장점은 모든 팀원에게 높은 자율과 책임이 주어지기에 스스로 성장하며 문제 해결력을 기를 수 있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시장 최고의 보상도 빼놓을 수 없는 강조 포인트였다. 일이 많고 힘든 건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단점이지만.


이 장점들을 부각하는 채용공고를 만들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다고 생각했다.

1) ‘생활 소비재 시장을 소비자에게 유리하도록 혁신한다'는 비전을 설명하고 → 비전을 이루는 동안 팀원들이 달성할 성장을 명시하는 것.

2) 우리 회사는 성장을 원하는 팀원들이 문제 해결력을 기르기에 최적의 공간이라는 걸 시작부터 강조하고 → 왜 그런지 근거를 이야기하며 회사를 소개하는 것.


어떤 흐름이 더 좋을지 알아보기 위해 빠르게 초안을 잡아 내부 팀원 대상으로 AB테스트를 진행했다. 7:3으로 A안이 우세했지만 이유와 근거가 예상보다 다양했다. A안은 너무 길어서 읽다 말았어요, B안은 메인카피가 별로라 A안을 골랐어요, B안은 너무 우리의 성장에만 집중해 회사의 매력이 덜 드러나요, 전반적으로 일이 힘들다는 표현이 너무 강조되어서 예비 지원자가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 등등. 좋아, A안을 바탕으로 피드백을 반영하면 되겠지!


영표님과 명근님에게 테스트 결과를 공유하고 세 번째 초안을 작성했다. 명근님의 디자인 프로토타입으로 확인하는 3번째 초안은 내가 봐도 멋있었다. 이게 마지막 초안인 줄 알았다.


기쁜 마음에 영표님이 찬물을 끼얹었다. 이 채용공고가 정말 우리의 최선이냐고. 회사 이름을 바꿔도 알아보지 못할 채용공고 아니냐고. AB테스트에서 얻은 피드백 대부분을 반영한 게 원인이었다. 모두의 취향이 들어가니 표현이 둥글어졌다. 우리 회사만의 매력이 뾰족하게 드러나지 못했다.




문제 3. 피드백은 더 빠르고 촘촘히 받아야 했다


5월 말에 시작된 프로젝트가 6월이 가도록 끝나지 않았다. 영표님의 일정 압박은 둘째 치고, 나 자신부터 납득할 수 없는 작업 현황이었다. 글 쓰는 마케터라고, 긴 글 쓰기는 나름 자신이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초고만 3번을 다시 썼다. 이대로라면 다음 초고도 엎어지지 않을 거라 확신할 수 없었다. 3번째 초고가 엎어진 다음, 밤늦게까지 문서 하나를 정리했다. 문서 제목은 ‘더 이상 늦어질 수 없다, 채용공고’. 채용공고가 자꾸 엎어지는 이유를 하나하나 따져보았다.


가장 큰 문제는 채용공고의 흐름이 구체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혼자 초고를 작성한 것이었다. 채용공고에서 해야 할 이야기는 정해졌지만, 그 이야기마다 어떤 소제목을 달고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는 작성 전 의견을 구하지 않았다.


여태 써온 블로그 글은 그렇게 해도 괜찮았다. 목적과 주제가 뚜렷하면 풀어내는 방식이야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건 채용공고다. 한 문장, 한 단어가 우리를 드러낼 소중한 기회다. 문단 단위로 들어갈 내용과 방향을 명확히 한 다음 써야 했다.


작업이 제대로 진전되지 않은 건 내 잘못이 컸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고 피드백을 많이 받지 않아서였다. 영표님과 명근님에게 양해를 구했다. 더 빠른 작업을 위해 두 분에게 새롭게 제안한 작업 방식은 이랬다.


1. 스쿼드를 시작할 때 영표님이 전달한 ‘채용공고 만들기’ 문서를 다시 정독한다.
2. 우리 채용공고의 목적에 맞게 컨셉을 정한다.
3. 컨셉에 맞게 파트마다 들어갈 내용을 정한다.
4. 3에 벗어나지 않도록 쓴다.
 a. 이때 키 카피를 먼저 쓰고, 들어갈 내용을 잡아 셋이서 확정한 후
 b. 키 카피에 이어질 본문을 쓴다.
5. 키 카피와 문장을 다듬는다.
6. 완성.

*가장 중요! 모든 단계에서 피드백을 요청해 의견 교환 텀을 짧게 가져간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영표님에게 초고의 최종 단계에서만 피드백을 요청한 게 문제였다. 영표님과 함께하는 첫 협업이라 적절한 피드백 빈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C레벨의 피드백이라니 부담스러움이 숨어 있었을 거다. 치과 가기 무서워하는 마음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이 나이 먹고 부끄러운 일이다.


자기반성으로 가득한 문서를 영표님에게 공유하는 순간에도 무시무시한 피드백을 걱정했는데, 영표님은 프로젝트 기간 중에 리뷰 과정이 있어서 좋다며 컨셉과 방향성, 전략을 확실히 잡아보자는 의견을 전해주셨다.




문제 4. 내 맘대로 한계를 만들지 말아야 했다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동안 명근님에게 가장 미안했다. 매 초고마다 멋진 디자인을 입혀 준 명근님, 진척이 없는 건 내가 쓴 초고 때문이라 답답할 법도 했는데 명근님은 그저 응원을 건네주실 뿐이었다. 콘텐츠 마케터니까 콘텐츠 흐름을 내가 리드해야 한다는 욕심에 일을 그르쳤다.


네 번째 초고는 시작부터 명근님과 함께했다. 채용공고 컨셉을 같이 정하고, 그 컨셉에 맞게 흐름을 정한 후 디자인과 텍스트 작성을 각각 진행하며 합을 맞추는 방식이었다. 명근님께서는 반전 매력이라는 컨셉을 뚝딱 제안해주셨다. 최고의 고객 경험을 만드는 우리들의 멋진 비전, 하지만 그 뒤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하는 우리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대조해 보여줘 강렬한 인상을 남기자는 것이었다. 바로 이거네요, 영표님도 나도 박수를 쳤다. 역시 명근님은 내가 아는 디자이너 중에 가장 뛰어난 분이고, 좋은 경험을 만들기 위한 디자인을 하는 분이었다. 진작 이런 방식으로 작업했으면 될 문제였다.


컨셉이 좋으니 카피도 뚝딱 나왔다. 고객의 10배 좋은 일상을 만들기 위해, 10배 치열하게 일하는 우리들. 다만 여느 회사의 채용공고와 비슷해 보이지 않도록 우리만의 비전을 상세히 묘사하기로 했다. 표현도 더욱 뾰족하고 솔직하게. ‘워라밸이 좋지 않다는 걸 말해주자'는 의견도 영표님과 명근님에게서 먼저 나왔다.


일반적으로 채용공고는 회사의 멋진 점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멋져 보여야 지원하고 싶어질 테니까. 그래서 나는 지난 3번의 초고에서 멋지고 둥근 표현을 골라 썼다. 이를테면 워라밸 문제는 ‘성장하는 스타트업이기에 업무 강도가 높다'는 식으로 다듬었는데, 내 맘대로 채용공고는 이래야 한다며 한계를 설정해두었던 거다.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던 한계를 나 혼자서.




태풍이 지나가고: 괜찮은 것은 대단한 것이 될 수 없다


7월 4일 월요일. 드디어 채용공고가 공개되었다. 채용공고 리뉴얼 스쿼드가 시작되고 6주, ‘더 이상 늦어질 수 없다, 채용공고' 문서를 만들고 2주가 지난 날이었다. 채용공고야 앞으로도 계속 다듬어가겠지만 ‘끝났다!’ 는 해방감 최고. 늦도록 글을 다듬고, 걱정에 잠을 설치던 날들이 지나갔다.


솔직히. 나는 내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는 콘텐츠 마케터로서 우리 회사 이야기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자만심이 약간 섞여 있었을 그 자부심 때문에 이번 프로젝트가 늘어졌다. 채용공고니까 누가 봐도 좋은 회사로 보이게 써야지, 워라밸이 나쁘다는 건 둥글둥글한 표현으로 순화해야지. 지금처럼 ‘솔직히 말하면 워라밸, 좋은 복지는 없습니다.’ 라는 말을 써도 될 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돌아보니 내가 잘 쓰는 글은 일반적인 글이었다. ‘이런 글은 이렇게' 가 정해져 있는 글은 빠르고 깔끔하게 잘 쓴다. 괜찮은 콘텐츠 마케터로 남고 싶다면 그 정도로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이라면 대단한 콘텐츠 마케터가 될 수 없다.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 콘텐츠가 전해져야 할 대상을 깊이 고민하고, 일반적인 독자가 아니라 그들에게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콘텐츠의 분량, 표현 방식은 대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괜찮은 콘텐츠 마케터 말고, 대단한 콘텐츠 마케터가 되자. 고이지 말자.




그렇게 완성된 채용공고가 궁금하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