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와이즐리
생초짜 신입에서 와이즐리 PM으로 거듭나기
이메일도 잘 못 쓰던 신입 PM, 3년 만에 브랜드를 만들고 회사 전략을 세우기까지
* 와이즐리 프로덕트 매니저 김경국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
나는 와이즐리 주니어 PM으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할 줄 아는 건 1도 없고 해야 할 건 산더미였던 신입 시절을 보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아직도 모르는 것, 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래도 와이즐리에 있는 동안 배운 것, 할 수 있는 것이 꽤 많아졌다. 이 글에서 생초짜 주니어 PM이 3년 동안 어떤 업무들을 했고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솔직하게 담아보려 한다.
2019년 7월 ~ 2020년 1월
: 와이즐리 입사 그리고 성장통
인턴 경험도, 별다른 진로 계획도 없던 대학생 시절. 나는 우연히 와이즐리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
미니 CEO...? 일단 지원해보자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던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대학교 4학년 때 와이즐리 팀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교내 동아리에서 와이즐리 팀과 헤어케어 신사업을 발굴하는 프로젝트를 했는데, 그때의 경험이 너무 신선했다. 대학생의 패기로 이런저런 전략과 아이디어를 갖고 가면 와이즐리 팀은 항상 “고객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고객의 quote는 정확히 무엇이었죠?” 라는 피드백을 반복했다. ‘이럴 거면 우리랑 프로젝트 하지 말고, 고객이랑 하지’ 라며 투덜댔지만, 말 그대로 고객에 ‘집착’하는 모습에 나는 점점 팀이 일하는 방식에 흥미가 생겼다.
그렇게 와이즐리 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있던 차에 PM 채용공고를 접하게 됐다.
직무에 대한 첫인상은 ‘엄청 다양한 일을 하네’ 였다. 그래서 엄청 끌렸다. 하지만 곧 걱정과 두려움이 뒤따랐다. ‘이 많은 일을 내가 어떻게 하지? 생활소비재 시장은 내가 아는 게 별로 없는데.’ 채용공고에 co-founder들이 문제 해결력을 기르는 데 많은 도움을 주겠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불안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 불안은 이력서 제출 전 COO 영표님과 나눈 커피챗에서 예기치 않게 확신으로 바뀌었다.
“뭐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드물죠. 대신 빠르게 배우는 것이 중요해요. 그리고 여기엔 그 배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훌륭한 팀원들이 많습니다.”
얼핏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같지만, 나는 그때 영표님의 눈에서 본 진심을 잊지 못한다. 그 대화 이후 일을 잘 배우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산업군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지원했고, 2019년 7월 운 좋게 와이즐리 팀과 함께하게 됐다.
미션: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들어라
과장 조금 보태서, 이게 내가 입사하자마자 받은 첫 임무였다. 당시 와이즐리에는 면도기 브랜드만 존재했는데, 그 뒤를 이을 스킨케어와 헤어케어 브랜드 런칭을 막 준비하기 시작하던 상황이었다. 나는 헤어케어 브랜드를 처음부터 만들어야 했다. 제품 개발은커녕 브랜드 이름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처음 이 미션을 받았을 땐 아주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랑받는 브랜드를 내 손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이걸 안 하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모두가 멋진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한다. 하지만 방법을 몰라서, 혹은 역량이 부족해서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입사하자마자 마주한 엄청난 목표에 막막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역량을 키우고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들 레시피를 찾아야 했다.
모든 건 결국 고객에서 시작해야 했다. 입사한 지 1주일 만에, 동기 주니어 PM분과 사무실 내 미팅룸에 자발적으로 갇혔다. 며칠 내내 고객에게 무작정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화 인터뷰만으로 고객을 이해하는 건 소개팅 상대의 취향을 몇 마디 대화로 알아내는 것처럼 어려웠다. 그래서 더 입체적으로 접근하려 했다. 보다 다양한 질문을 건네고, 필요하다면 FGI(Focus Group Interview)나 1:1 대면 인터뷰를 통해 고객을 직접 만나며 한 명 한 명을 다방면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솔직히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 멋있게 엑셀 시뮬레이션도 돌리고, 다른 업체랑 마케팅 협업도 많이 할 줄 알았는데... 입사 초기에는 고객에게 건넬 질문을 고민하고, 그들을 설문하고 인터뷰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다. 고객에 대한 이해가 모든 활동의 근간이라는 걸. 이때의 경험은 우리에게 무수히 많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성장통의 시작
그러나 모든 것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메일도 하나 제대로 못 써서 일요일에 출근해 온종일 두괄식 메일 작성법을 연습한 적도 있다. 가설을 더 명확하게 제시하기 위해 퇴근 후 새벽 5시까지 내 방 책상에서 울상으로 작업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도 미팅 후 영표님에게 따끔한 피드백을 받기 일쑤였다. 그렇게 난 점차 위축되어 갔다.
아니니 다를까 어느 일요일 저녁, 타임라인 관리를 더 잘해야 한다는 CEO 동욱님의 피드백이 회사 메신저로 날아왔다. 메시지를 받자마자 그동안의 막막함과 설움이 폭발해버렸다. 이대로는 다음날 출근을 못할 것 같았다. 일요일 저녁 10시에 동욱님께 면담을 요청하고 그 즉시 사무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나의 막막함을 털어놨다.
“여기서 저만 일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의 간절한 고민에 돌아온 건 “괜찮아, 잘하고 있어” 식의 따뜻한 위로가 아니었다. 동욱님은 마치 컨설팅 문제를 풀듯 내 고민을 쪼개기 시작했다.
“왜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일을 못 한다는 게 내 기준에 못 미친다는 건가요, 아니면 남들이 나보다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건가요?”
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이런저런 소리를 얼버무리다 면담을 끝마쳤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정말 이상하게도 왠지 모를 희망을 얻었다. 동욱님도 일을 못했을 때가 있었다며(내가 정말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확인 사살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긴 했다) 공유해주신 경험담도 도움이 됐지만, 아마도 내가 느끼는 막연한 어려움을 나름대로 구체화하고 나니 ‘어쩌면 이걸 해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이쯤 되면 당시의 내가 얼마나 초짜 주니어였는지 감이 오실 거다. 그럼에도 나는 이 경험들이 자랑스럽다. 성장에 대한 열정만으로 이 모든 어려움을 정면돌파하자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힘들다고 숨지 않고, 부족한 점을 인정하며 나아가려고 계속 고민했다. 어쨌든 이렇게 나의 첫 회사생활은 험난한 서막을 알렸다.
2020년 2월 ~ 2021년 4월
: 브랜드가 탄생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사이, 브랜드는 점차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우리의 핵심 고객은 헤어케어 시장 내 두피 고민이 있는 사람으로 정의되었다. 탈모, 비듬 등 두피 문제 때문에 많은 고객들이 고통을 겪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도하게 비싼 샴푸를 구매하는 경향도 뚜렷했다.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시장 문제였다. 고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브랜드의 가치제언도 정립되었다. 이제는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일. 즉, 브랜드의 비주얼 자산을 개발하는 작업과 제품을 개발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했다.
영국에 가다
와이즐리에 합류한 지 6개월이 조금 넘어가던 시점, 정신을 차려 보니 영국 출장길에 오르고 있었다. Turner Duckworth라는 영국 디자인 에이전시와 협업 킥오프 미팅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소비재 시장에서 디자인은 너무나도 중요했다. 우리가 어떤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하는가를 기능적으로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하는데, 무의식적으로 전달되는 브랜드의 방향성은 주로 디자인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파트너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국내 시장의 제품과 디자인적으로도 차별화된 접근을 해보자는 취지로 해외 에이전시 위주로 탐색하게 되었고, 당시 여러 기준을 충족한다고 판단되었던 Turner Duckworth가 최종 선정되었다. TD는 영국과 미국에 오피스를 두고 있는데, 우리는 특히 영국 TD의 포트폴리오를 선호해 콕 집어 영국 오피스와 진행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훌륭한 디자인은 시장과 브랜드에 대한 완벽한 이해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언어도 문화도 다른 이들이 한국의 두피/헤어케어 시장을, 아직 세상에도 나오지 않은 헤드웍스를 이해하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한국의 시장 상황, 그리고 우리 브랜드가 제언하고 싶은 가치까지 무려 200장에 달하는 문서를 만들어서 영국으로 떠났다. 내가 소중하게 빚고 있는 브랜드를 지구 반대편 디자이너들에게 설명하고, 그들의 공감과 기대를 사는 건 너무나도 값지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논문 자료에 파묻히다
영국 출장에서 돌아온 후 나는 제품 개발에 몰두했다. 브랜딩과 전혀 다른 성격의 일이 시작된 것이다. 브랜드의 디자인과 톤앤매너는 TD에서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는 얼른 제품을 기획하고 실제로 만들어내야 했다.
우리의 타깃 고객에게는 기능을 강조한 두피케어 브랜드가 필요했다. 그래서 제품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제품 개발 과정의 최우선순위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화학적 지식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경영학과 졸업생이었다(심지어 공식적으로 졸업도 안 했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제조사의 전문역량에 의지해보자고 생각했다.
이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놀랍게도 제품의 기능에 대해 우리만큼 높은 기준을 요구한 업체는 여태껏 거의 없었고, 꽤 많은 수의 제조사가 관성적으로 비슷한 컨셉 제품들을 찍어내고 있었다. 제품의 실제 효능과 관계없이 마케팅을 위한 그럴싸한 성분명만 내세우는 제품이 많았던 것이다. 이러한 업계의 행태는 실망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잘하면 뭔가 다른 걸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샴푸나 화장품 성분에 대한 논문 자료를 닥치는 대로 읽어보며 몇 개월을 보냈다. 그러고 나니 유명 제조사의 연구팀장과도 꽤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팀과 뜻을 같이하는 제조 파트너사를 한 두 군데 찾을 수 있게 되었다. 2020년 7월, 우리가 원하는 제품 스펙의 요구사항을 담은 150장에 육박하는 PRD(Product Requirement Document)도 탄생했다. 내가 온전히 리드한 프로젝트의 첫 번째 결과물이었다.
낮에는 제조공장으로, 밤에는 폰 부스로
제조사에 전달된 PRD는 말 그대로 요청서였다. 요청서가 잘 나왔다고 좋은 제품이 나오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이때부터 발품팔이가 시작되었다. 10개 정도의 제조사에 PRD를 전달하고 샘플을 받아보았다. 그리고 최대한 많은 고객들의 사용후기를 받기 위해 70명이 넘는 패널 고객을 섭외했다.
샘플 개선에 기꺼이 참여해준 고객분들이 감사해서, 또 그들이 진심을 다해 피드백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주말에 화상으로라도 프로젝트 킥오프를 하고 중간중간 개인적으로 안부나 명절 인사를 건네기도 하며 샘플들을 검증했다. 매일같이 고객들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고 얻은 자료를 취합하여 인천 등 각지에 위치한 공장으로 렌트카를 빌려 달려갔다. 그곳에선 5~6명의 연구원과 혼자 미팅을 하고 돌아왔다. 이 작업을 약 6~7개월 반복했다.
돌이켜 보면, 이 일정을 소화하게 한 원동력은 불안함이었다. ‘많은 고객들이 좋아하는 제품이 나올 수 있을까’, 매일을 이런 불안함 속에서 살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불안은 브랜드가 잘 됐으면 하는 건강하고 진심 어린 바람에 기인했다. 진심이 통한 걸까, 시장에서의 본격적인 검증 전부터 꽤나 긍정적인 사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격 & 단가 협상
제품 개발이 거의 막바지로 치달을 때쯤, 나에겐 아주 중요한 과제가 남아있었다. 제품의 가격 책정과 단가 협상. 당시 와이즐리의 모든 브랜드 팀은 ‘고객에게 고품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제품 개발이 어느 정도 진행되기 전까지는 제조사에 타깃 단가를 공개하지 않았다. 단가를 초반부터 고려하다 보면 결국 제품 개발 과정에서 품질 타협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취지였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아주 높은 수준의 원가 경쟁력이 필요했다. 제품의 합리적인 가격은 우리가 시장에 등장한 이유이자, 고객들이 우리를 사랑해주는 가장 큰 이유였다. 높은 수준의 원가 경쟁력을 어떻게든 만들어내야 했다.
그렇게 제조사들과 단가 협상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는 여러 방법을 시도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우리가 만들고 싶어 하는 시장과 가치를 온전히 설명하고 전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그 과정이 늘 순조롭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비전을 공감해준 몇몇 파트너사 덕분에 단가협상은 잘 마무리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고객들이 합리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가격대를 선정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은 과장을 조금 보태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들고 최신 아이패드를 사고 싶어 하는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만 원으로 아이패드를 살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혁신 아니겠는가?
마지막 단계, 공급망과 물류
런칭까지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공급망을 최적화하는 일이 남아있었다. 수십 개의 원료 및 부자재 수량과 납기일자를 관리하고, 무엇하나 어그러지지 않게 신경을 써야 했다. 내가, 혹은 협력사의 담당자가 조그마한 실수라도 저지른다면 바로 런칭일이 밀리는 외줄타기를 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 예상치 못한 문제에 대응하는 법 등 많은 것을 배웠다. 도착하기로 한 원료가 제때 오질 않고, 괜찮았던 포장지의 퀄리티가 어그러지는 등 매일매일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가 발생했다. 그래도 겨우겨우 모든 게 마무리되어가던 찰나, 소량의 단상자에 인쇄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결과, 나는 2021년 5월 3일, 헤드웍스의 웹사이트가 처음으로 오픈되는 런칭 날에도 경기도 평택에 있는 물류센터에서 제품을 검열하고 있었다.
2021년 5월 ~ 2021년 11월
: 브랜드 성장을 위한 고민
헤드웍스는 런칭 후 약 1달 정도의 검증 기간을 거쳤다. 검증을 위해 최소한의 고객만을 모집한 후, 제품과 브랜드의 매력도와 만족도 조사를 진행하는 프로세스였다. 다행히도 우리가 목표한 수준을 달성했고, 본격적으로 시장에 나가기로 했다. 브랜드 성장을 위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헤드웍스, 시장에 첫발을 내딛다
진정성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과 고객이 브랜드에서 진정성을 느끼는 것은 정말 다른 문제였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만들었으니 고객이 잘 알아주시지 않을까?”라는 달콤한 상상에 빠지기도 했지만 현실은 전혀 아니었다. 수십 년간 넓은 고객풀을 확보한, 대규모 마케팅과 유통을 진행하는 기존 플레이어들과 경쟁하는 건 생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을 찾아야 했다.
우리에게는 크게 두 가지 차별점이 있었다. 1) 브랜드의 솔직함과 2) 제품의 기능성. 후자는 우리 스스로 자신 있는 영역이었지만 소비재 시장에서 모든 고객들이 구매 전부터 두드러지게 느끼긴 어려운 장점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브랜드의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측면으로 고객의 관심을 끄는 것을 계획했다.
당시 DA(Display Ad)는 다른 매니저님이 리드해주고 계셨는데, 브랜드의 솔직함을 내세우려면 제품개발을 주도했던 나의 스토리를 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제품의 기능이나 가격을 내세우는 기능적인 접근과 결을 달리한 것이었다. 성과는 예상외 선전이었다. 고객들은 신생 브랜드가 밝히는 업계에 대한 폭로와 성분에 대한 진실을 환영해주었다.
바이럴을 시도해보자
디스플레이 광고로는 영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전사적인 공감대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한 채널에서 저비용 모객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공략했다. 탈모 커뮤니티 및 우리의 핵심 고객이 주로 이용할 것 같은 공간에서 탈모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고, 올바른 케어 방법을 다른 콘텐츠 매니저님들과 함께 배포하고 공유했다. 십만 뷰를 웃도는 성공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의 고민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글 자체는 주목을 받지만, 헤드웍스에 대해 얘기할 맥락이 부재했다. 특정 브랜드 언급이 금기시되는 온라인 커뮤니티 채널에서는 더욱 그랬다. 우리 브랜드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대한 단초만 제공한 채,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바이럴 시도는 일단락되었다.
21년 11월 ~ 지금
: 파괴되는 것은 우리인가, 시장인가
헤드웍스를 런칭하고 반년 동안 브랜드의 성장 방식을 거듭 고민했다. 그러나 아이디어 대부분은 전형적인 마케팅 수법에서 맴돌고 있었다.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그러면서도 임팩트를 낼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쓰리아웃이 아니라, 삼백아웃 해도 된다면
뭐 하고 싶으세요?
갑자기 동욱님이 찾아와서 나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려면 소위 미친 행동을 해봐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아이디어가 혹시 있냐는 것이었다. 실패해도 괜찮은 기회가 많다면 어떤 아이디어를 시도해보고 싶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평소 품고 있던 아이디어 몇 가지를 말씀드렸다. 그 중 하나가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춰보자는 것이었다.
와이즐리가 시장에 등장한지 만 4년이 넘었다. 그간 D2C(Direct to Customer) 모델로 비용을 낮춰 합리적인 가격을 제안하는 플레이어는 어느 카테고리 할 것 없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객들이 와이즐리를 찾을 수밖에 없는 더 강력한 동기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나도 한 명의 소비자로서 와이즐리만 찾아야 하는 이유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느꼈다.
고객들이 와이즐리를 찾아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본질은 가성비에 있었다. 이 가성비를 더욱 강화하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가격을 내리는 것이었다. 게다가 가격을 인하하는 것은 가성비 강화를 넘어 우리 브랜드의 비전을 더욱 강력히 전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일반적인 소비재 시장 비용 구조는 2:8로, 소비자 가격의 20%만이 제품 생산에 사용된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이 구조를 8:2로 바꿔 제품 원가를 가격의 80%까지 끌어올리자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비전이 내부 타운홀 미팅에서만 소개되는 것으로 그치는 게 늘 아쉬웠다. 바로 8:2의 구조를 만들긴 어려워도, 이 목표를 고객들에게 말해주고 우리가 이를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리는 데에는 가격파괴가 꼭 필요해보였다.
가격파괴, Blitz!
내 머릿속에만 있던 개념적인 전략이 실제로 기획되고, 테스트를 거쳐 실행되는 건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과정은 많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 전략이 파격적이고, 호불호가 많이 갈릴수록 더욱 그렇다.
우리는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그간 우리가 일하던 방식을 거의 180도 바꾸었다. 100%의 퀄리티를 구현하는 데 집착하지 않고, 70~80% 정도의 퀄리티를 구현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을 찾아 실행에 옮기는 것이었다. 모든 제품의 가격을 파괴적으로 낮추고, MVP 테스트 웹사이트를 3주 만에 만들었다. 와이즐리 탄생 이후 처음으로 내부적으로 운영하는 두 개의 판매채널이 생긴 것이다. 2021년 11월 25일, 와이즐리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만들어진 테스트 페이지가 오픈되었다.
테스트 페이지에서 판매를 시작한 지 채 1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 우리는 꽤나 놀라운 결과를 목격하기 시작했다. 핵심 지표였던 추천의향, 제품만족도, 가격만족도, 전환율, 객단가 등이 모두 기대 이상으로 나온 것이었다.
이로써 초기의 가설이 어느정도 일리 있다는 것을 검증했다. 물론 보완해야 하는 것도 많았다. 그럼에도 나를 포함한 팀은 고객이 열광할 만한 힌트를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벅차했다. 깊은 땅굴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한 느낌이었지만, 나는 의도적으로 이 결과를 계속해서 의심했다. 회사에 너무나도 중요한 결정이었기에 조금이라도 틀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검증하기를 반복한 결과, 우리는 가격 파괴가 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에 점점 확신을 얻었다. 그 과정에서 모든 팀원들과 방향성에 대한 건강한 의견을 나눈 뒤, 우리는 결국 전 제품의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추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와이즐리의 모든 제품의 가격 정책에 대한 첫 번째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이에 입각하여 모든 제품의 새 가격을 설정하는 것으로 가격파괴 스쿼드를 마무리지었다.
가격 정책서를 마무리 하던 날 밤, 이런 생각이 들며 등골이 서늘해졌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른 거지?”
가격파괴의 결말은 아직 모른다. 무조건 성공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잘되게 만들 생각이다. 짧고 굵었던 3개월 반 동안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는 임팩트를 상상하며 설레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다. 근데 가만... 이렇게 쭉 돌이켜보니, 물론 아직도 부족한 게 너무나 많은 초년생이지만, 생 초짜 신입이 이 정도면 꽤 많이 큰 것 같다! (토닥토닥)
글을 마치며
와이즐리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샴푸 성분에 대한 지식도 아니고, 고객을 인터뷰하는 방법론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업무를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좋은 기획자는 기획자의 마인드를 버릴 줄 아는 사람, 즉 고객의 입장에 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 3년 동안 짧게나마 배웠다.
고객으로 빙의하는 것은 늘 쉽지 않다. 그러나 노력하다 보면 가끔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내가 하려던 업무가 관성적으로 그냥 해야될 것 같아서 하려던 것이었구나, 진짜 고객이 필요한 건 이게 아니구나.’ 그러다 보면 많은 것을 덜어내게 되고, 진짜 고객에게 필요한 것에 집중하게 된다.
고객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태도. 이것만큼은 어느 곳에서든 가장 중요한 역량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가장 올바른 시기에 가장 올바른 곳에서 배워가고 있다고 자부한다.
프로덕트 매니저(PM)는 와이즐리의 mini-CEO입니다. 와이즐리에서 진행되는 주요 사업계획을 최전선에서 직접 리드하며, 회사의 목표 달성에 도움되는 모든 일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시장을 혁신하고 싶은 분께서는 아래 채용공고를 꼭 확인해주세요. 주니어 PM, 시니어 Lead PM 모두 채용 중입니다.
* 와이즐리 프로덕트 매니저 김경국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
나는 와이즐리 주니어 PM으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할 줄 아는 건 1도 없고 해야 할 건 산더미였던 신입 시절을 보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아직도 모르는 것, 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래도 와이즐리에 있는 동안 배운 것, 할 수 있는 것이 꽤 많아졌다. 이 글에서 생초짜 주니어 PM이 3년 동안 어떤 업무들을 했고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솔직하게 담아보려 한다.
2019년 7월 ~ 2020년 1월: 와이즐리 입사 그리고 성장통
인턴 경험도, 별다른 진로 계획도 없던 대학생 시절. 나는 우연히 와이즐리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
미니 CEO...? 일단 지원해보자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던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대학교 4학년 때 와이즐리 팀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교내 동아리에서 와이즐리 팀과 헤어케어 신사업을 발굴하는 프로젝트를 했는데, 그때의 경험이 너무 신선했다. 대학생의 패기로 이런저런 전략과 아이디어를 갖고 가면 와이즐리 팀은 항상 “고객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고객의 quote는 정확히 무엇이었죠?” 라는 피드백을 반복했다. ‘이럴 거면 우리랑 프로젝트 하지 말고, 고객이랑 하지’ 라며 투덜댔지만, 말 그대로 고객에 ‘집착’하는 모습에 나는 점점 팀이 일하는 방식에 흥미가 생겼다.
그렇게 와이즐리 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있던 차에 PM 채용공고를 접하게 됐다.
직무에 대한 첫인상은 ‘엄청 다양한 일을 하네’ 였다. 그래서 엄청 끌렸다. 하지만 곧 걱정과 두려움이 뒤따랐다. ‘이 많은 일을 내가 어떻게 하지? 생활소비재 시장은 내가 아는 게 별로 없는데.’ 채용공고에 co-founder들이 문제 해결력을 기르는 데 많은 도움을 주겠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불안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 불안은 이력서 제출 전 COO 영표님과 나눈 커피챗에서 예기치 않게 확신으로 바뀌었다.
“뭐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드물죠. 대신 빠르게 배우는 것이 중요해요. 그리고 여기엔 그 배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훌륭한 팀원들이 많습니다.”
얼핏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같지만, 나는 그때 영표님의 눈에서 본 진심을 잊지 못한다. 그 대화 이후 일을 잘 배우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산업군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지원했고, 2019년 7월 운 좋게 와이즐리 팀과 함께하게 됐다.
미션: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들어라
과장 조금 보태서, 이게 내가 입사하자마자 받은 첫 임무였다. 당시 와이즐리에는 면도기 브랜드만 존재했는데, 그 뒤를 이을 스킨케어와 헤어케어 브랜드 런칭을 막 준비하기 시작하던 상황이었다. 나는 헤어케어 브랜드를 처음부터 만들어야 했다. 제품 개발은커녕 브랜드 이름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처음 이 미션을 받았을 땐 아주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랑받는 브랜드를 내 손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이걸 안 하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모두가 멋진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한다. 하지만 방법을 몰라서, 혹은 역량이 부족해서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입사하자마자 마주한 엄청난 목표에 막막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역량을 키우고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들 레시피를 찾아야 했다.
모든 건 결국 고객에서 시작해야 했다. 입사한 지 1주일 만에, 동기 주니어 PM분과 사무실 내 미팅룸에 자발적으로 갇혔다. 며칠 내내 고객에게 무작정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화 인터뷰만으로 고객을 이해하는 건 소개팅 상대의 취향을 몇 마디 대화로 알아내는 것처럼 어려웠다. 그래서 더 입체적으로 접근하려 했다. 보다 다양한 질문을 건네고, 필요하다면 FGI(Focus Group Interview)나 1:1 대면 인터뷰를 통해 고객을 직접 만나며 한 명 한 명을 다방면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솔직히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 멋있게 엑셀 시뮬레이션도 돌리고, 다른 업체랑 마케팅 협업도 많이 할 줄 알았는데... 입사 초기에는 고객에게 건넬 질문을 고민하고, 그들을 설문하고 인터뷰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다. 고객에 대한 이해가 모든 활동의 근간이라는 걸. 이때의 경험은 우리에게 무수히 많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성장통의 시작
그러나 모든 것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메일도 하나 제대로 못 써서 일요일에 출근해 온종일 두괄식 메일 작성법을 연습한 적도 있다. 가설을 더 명확하게 제시하기 위해 퇴근 후 새벽 5시까지 내 방 책상에서 울상으로 작업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도 미팅 후 영표님에게 따끔한 피드백을 받기 일쑤였다. 그렇게 난 점차 위축되어 갔다.
아니니 다를까 어느 일요일 저녁, 타임라인 관리를 더 잘해야 한다는 CEO 동욱님의 피드백이 회사 메신저로 날아왔다. 메시지를 받자마자 그동안의 막막함과 설움이 폭발해버렸다. 이대로는 다음날 출근을 못할 것 같았다. 일요일 저녁 10시에 동욱님께 면담을 요청하고 그 즉시 사무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나의 막막함을 털어놨다.
“여기서 저만 일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의 간절한 고민에 돌아온 건 “괜찮아, 잘하고 있어” 식의 따뜻한 위로가 아니었다. 동욱님은 마치 컨설팅 문제를 풀듯 내 고민을 쪼개기 시작했다.
“왜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일을 못 한다는 게 내 기준에 못 미친다는 건가요, 아니면 남들이 나보다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건가요?”
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이런저런 소리를 얼버무리다 면담을 끝마쳤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정말 이상하게도 왠지 모를 희망을 얻었다. 동욱님도 일을 못했을 때가 있었다며(내가 정말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확인 사살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긴 했다) 공유해주신 경험담도 도움이 됐지만, 아마도 내가 느끼는 막연한 어려움을 나름대로 구체화하고 나니 ‘어쩌면 이걸 해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이쯤 되면 당시의 내가 얼마나 초짜 주니어였는지 감이 오실 거다. 그럼에도 나는 이 경험들이 자랑스럽다. 성장에 대한 열정만으로 이 모든 어려움을 정면돌파하자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힘들다고 숨지 않고, 부족한 점을 인정하며 나아가려고 계속 고민했다. 어쨌든 이렇게 나의 첫 회사생활은 험난한 서막을 알렸다.
2020년 2월 ~ 2021년 4월: 브랜드가 탄생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사이, 브랜드는 점차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우리의 핵심 고객은 헤어케어 시장 내 두피 고민이 있는 사람으로 정의되었다. 탈모, 비듬 등 두피 문제 때문에 많은 고객들이 고통을 겪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도하게 비싼 샴푸를 구매하는 경향도 뚜렷했다.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시장 문제였다. 고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브랜드의 가치제언도 정립되었다. 이제는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일. 즉, 브랜드의 비주얼 자산을 개발하는 작업과 제품을 개발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했다.
영국에 가다
와이즐리에 합류한 지 6개월이 조금 넘어가던 시점, 정신을 차려 보니 영국 출장길에 오르고 있었다. Turner Duckworth라는 영국 디자인 에이전시와 협업 킥오프 미팅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소비재 시장에서 디자인은 너무나도 중요했다. 우리가 어떤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하는가를 기능적으로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하는데, 무의식적으로 전달되는 브랜드의 방향성은 주로 디자인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파트너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국내 시장의 제품과 디자인적으로도 차별화된 접근을 해보자는 취지로 해외 에이전시 위주로 탐색하게 되었고, 당시 여러 기준을 충족한다고 판단되었던 Turner Duckworth가 최종 선정되었다. TD는 영국과 미국에 오피스를 두고 있는데, 우리는 특히 영국 TD의 포트폴리오를 선호해 콕 집어 영국 오피스와 진행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훌륭한 디자인은 시장과 브랜드에 대한 완벽한 이해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언어도 문화도 다른 이들이 한국의 두피/헤어케어 시장을, 아직 세상에도 나오지 않은 헤드웍스를 이해하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한국의 시장 상황, 그리고 우리 브랜드가 제언하고 싶은 가치까지 무려 200장에 달하는 문서를 만들어서 영국으로 떠났다. 내가 소중하게 빚고 있는 브랜드를 지구 반대편 디자이너들에게 설명하고, 그들의 공감과 기대를 사는 건 너무나도 값지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논문 자료에 파묻히다
영국 출장에서 돌아온 후 나는 제품 개발에 몰두했다. 브랜딩과 전혀 다른 성격의 일이 시작된 것이다. 브랜드의 디자인과 톤앤매너는 TD에서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는 얼른 제품을 기획하고 실제로 만들어내야 했다.
우리의 타깃 고객에게는 기능을 강조한 두피케어 브랜드가 필요했다. 그래서 제품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제품 개발 과정의 최우선순위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화학적 지식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경영학과 졸업생이었다(심지어 공식적으로 졸업도 안 했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제조사의 전문역량에 의지해보자고 생각했다.
이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놀랍게도 제품의 기능에 대해 우리만큼 높은 기준을 요구한 업체는 여태껏 거의 없었고, 꽤 많은 수의 제조사가 관성적으로 비슷한 컨셉 제품들을 찍어내고 있었다. 제품의 실제 효능과 관계없이 마케팅을 위한 그럴싸한 성분명만 내세우는 제품이 많았던 것이다. 이러한 업계의 행태는 실망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잘하면 뭔가 다른 걸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샴푸나 화장품 성분에 대한 논문 자료를 닥치는 대로 읽어보며 몇 개월을 보냈다. 그러고 나니 유명 제조사의 연구팀장과도 꽤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팀과 뜻을 같이하는 제조 파트너사를 한 두 군데 찾을 수 있게 되었다. 2020년 7월, 우리가 원하는 제품 스펙의 요구사항을 담은 150장에 육박하는 PRD(Product Requirement Document)도 탄생했다. 내가 온전히 리드한 프로젝트의 첫 번째 결과물이었다.
낮에는 제조공장으로, 밤에는 폰 부스로
제조사에 전달된 PRD는 말 그대로 요청서였다. 요청서가 잘 나왔다고 좋은 제품이 나오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이때부터 발품팔이가 시작되었다. 10개 정도의 제조사에 PRD를 전달하고 샘플을 받아보았다. 그리고 최대한 많은 고객들의 사용후기를 받기 위해 70명이 넘는 패널 고객을 섭외했다.
샘플 개선에 기꺼이 참여해준 고객분들이 감사해서, 또 그들이 진심을 다해 피드백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주말에 화상으로라도 프로젝트 킥오프를 하고 중간중간 개인적으로 안부나 명절 인사를 건네기도 하며 샘플들을 검증했다. 매일같이 고객들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고 얻은 자료를 취합하여 인천 등 각지에 위치한 공장으로 렌트카를 빌려 달려갔다. 그곳에선 5~6명의 연구원과 혼자 미팅을 하고 돌아왔다. 이 작업을 약 6~7개월 반복했다.
돌이켜 보면, 이 일정을 소화하게 한 원동력은 불안함이었다. ‘많은 고객들이 좋아하는 제품이 나올 수 있을까’, 매일을 이런 불안함 속에서 살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불안은 브랜드가 잘 됐으면 하는 건강하고 진심 어린 바람에 기인했다. 진심이 통한 걸까, 시장에서의 본격적인 검증 전부터 꽤나 긍정적인 사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격 & 단가 협상
제품 개발이 거의 막바지로 치달을 때쯤, 나에겐 아주 중요한 과제가 남아있었다. 제품의 가격 책정과 단가 협상. 당시 와이즐리의 모든 브랜드 팀은 ‘고객에게 고품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제품 개발이 어느 정도 진행되기 전까지는 제조사에 타깃 단가를 공개하지 않았다. 단가를 초반부터 고려하다 보면 결국 제품 개발 과정에서 품질 타협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취지였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아주 높은 수준의 원가 경쟁력이 필요했다. 제품의 합리적인 가격은 우리가 시장에 등장한 이유이자, 고객들이 우리를 사랑해주는 가장 큰 이유였다. 높은 수준의 원가 경쟁력을 어떻게든 만들어내야 했다.
그렇게 제조사들과 단가 협상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는 여러 방법을 시도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우리가 만들고 싶어 하는 시장과 가치를 온전히 설명하고 전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그 과정이 늘 순조롭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비전을 공감해준 몇몇 파트너사 덕분에 단가협상은 잘 마무리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고객들이 합리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가격대를 선정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은 과장을 조금 보태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들고 최신 아이패드를 사고 싶어 하는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만 원으로 아이패드를 살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혁신 아니겠는가?
마지막 단계, 공급망과 물류
런칭까지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공급망을 최적화하는 일이 남아있었다. 수십 개의 원료 및 부자재 수량과 납기일자를 관리하고, 무엇하나 어그러지지 않게 신경을 써야 했다. 내가, 혹은 협력사의 담당자가 조그마한 실수라도 저지른다면 바로 런칭일이 밀리는 외줄타기를 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 예상치 못한 문제에 대응하는 법 등 많은 것을 배웠다. 도착하기로 한 원료가 제때 오질 않고, 괜찮았던 포장지의 퀄리티가 어그러지는 등 매일매일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가 발생했다. 그래도 겨우겨우 모든 게 마무리되어가던 찰나, 소량의 단상자에 인쇄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결과, 나는 2021년 5월 3일, 헤드웍스의 웹사이트가 처음으로 오픈되는 런칭 날에도 경기도 평택에 있는 물류센터에서 제품을 검열하고 있었다.
2021년 5월 ~ 2021년 11월: 브랜드 성장을 위한 고민
헤드웍스는 런칭 후 약 1달 정도의 검증 기간을 거쳤다. 검증을 위해 최소한의 고객만을 모집한 후, 제품과 브랜드의 매력도와 만족도 조사를 진행하는 프로세스였다. 다행히도 우리가 목표한 수준을 달성했고, 본격적으로 시장에 나가기로 했다. 브랜드 성장을 위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헤드웍스, 시장에 첫발을 내딛다
진정성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과 고객이 브랜드에서 진정성을 느끼는 것은 정말 다른 문제였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만들었으니 고객이 잘 알아주시지 않을까?”라는 달콤한 상상에 빠지기도 했지만 현실은 전혀 아니었다. 수십 년간 넓은 고객풀을 확보한, 대규모 마케팅과 유통을 진행하는 기존 플레이어들과 경쟁하는 건 생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을 찾아야 했다.
우리에게는 크게 두 가지 차별점이 있었다. 1) 브랜드의 솔직함과 2) 제품의 기능성. 후자는 우리 스스로 자신 있는 영역이었지만 소비재 시장에서 모든 고객들이 구매 전부터 두드러지게 느끼긴 어려운 장점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브랜드의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측면으로 고객의 관심을 끄는 것을 계획했다.
당시 DA(Display Ad)는 다른 매니저님이 리드해주고 계셨는데, 브랜드의 솔직함을 내세우려면 제품개발을 주도했던 나의 스토리를 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제품의 기능이나 가격을 내세우는 기능적인 접근과 결을 달리한 것이었다. 성과는 예상외 선전이었다. 고객들은 신생 브랜드가 밝히는 업계에 대한 폭로와 성분에 대한 진실을 환영해주었다.
바이럴을 시도해보자
디스플레이 광고로는 영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전사적인 공감대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한 채널에서 저비용 모객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공략했다. 탈모 커뮤니티 및 우리의 핵심 고객이 주로 이용할 것 같은 공간에서 탈모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고, 올바른 케어 방법을 다른 콘텐츠 매니저님들과 함께 배포하고 공유했다. 십만 뷰를 웃도는 성공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의 고민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글 자체는 주목을 받지만, 헤드웍스에 대해 얘기할 맥락이 부재했다. 특정 브랜드 언급이 금기시되는 온라인 커뮤니티 채널에서는 더욱 그랬다. 우리 브랜드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대한 단초만 제공한 채,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바이럴 시도는 일단락되었다.
21년 11월 ~ 지금: 파괴되는 것은 우리인가, 시장인가
헤드웍스를 런칭하고 반년 동안 브랜드의 성장 방식을 거듭 고민했다. 그러나 아이디어 대부분은 전형적인 마케팅 수법에서 맴돌고 있었다.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그러면서도 임팩트를 낼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쓰리아웃이 아니라, 삼백아웃 해도 된다면
뭐 하고 싶으세요?
갑자기 동욱님이 찾아와서 나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려면 소위 미친 행동을 해봐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아이디어가 혹시 있냐는 것이었다. 실패해도 괜찮은 기회가 많다면 어떤 아이디어를 시도해보고 싶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평소 품고 있던 아이디어 몇 가지를 말씀드렸다. 그 중 하나가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춰보자는 것이었다.
와이즐리가 시장에 등장한지 만 4년이 넘었다. 그간 D2C(Direct to Customer) 모델로 비용을 낮춰 합리적인 가격을 제안하는 플레이어는 어느 카테고리 할 것 없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객들이 와이즐리를 찾을 수밖에 없는 더 강력한 동기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나도 한 명의 소비자로서 와이즐리만 찾아야 하는 이유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느꼈다.
고객들이 와이즐리를 찾아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본질은 가성비에 있었다. 이 가성비를 더욱 강화하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가격을 내리는 것이었다. 게다가 가격을 인하하는 것은 가성비 강화를 넘어 우리 브랜드의 비전을 더욱 강력히 전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일반적인 소비재 시장 비용 구조는 2:8로, 소비자 가격의 20%만이 제품 생산에 사용된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이 구조를 8:2로 바꿔 제품 원가를 가격의 80%까지 끌어올리자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비전이 내부 타운홀 미팅에서만 소개되는 것으로 그치는 게 늘 아쉬웠다. 바로 8:2의 구조를 만들긴 어려워도, 이 목표를 고객들에게 말해주고 우리가 이를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리는 데에는 가격파괴가 꼭 필요해보였다.
가격파괴, Blitz!
내 머릿속에만 있던 개념적인 전략이 실제로 기획되고, 테스트를 거쳐 실행되는 건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과정은 많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 전략이 파격적이고, 호불호가 많이 갈릴수록 더욱 그렇다.
우리는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그간 우리가 일하던 방식을 거의 180도 바꾸었다. 100%의 퀄리티를 구현하는 데 집착하지 않고, 70~80% 정도의 퀄리티를 구현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을 찾아 실행에 옮기는 것이었다. 모든 제품의 가격을 파괴적으로 낮추고, MVP 테스트 웹사이트를 3주 만에 만들었다. 와이즐리 탄생 이후 처음으로 내부적으로 운영하는 두 개의 판매채널이 생긴 것이다. 2021년 11월 25일, 와이즐리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만들어진 테스트 페이지가 오픈되었다.
테스트 페이지에서 판매를 시작한 지 채 1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 우리는 꽤나 놀라운 결과를 목격하기 시작했다. 핵심 지표였던 추천의향, 제품만족도, 가격만족도, 전환율, 객단가 등이 모두 기대 이상으로 나온 것이었다.
이로써 초기의 가설이 어느정도 일리 있다는 것을 검증했다. 물론 보완해야 하는 것도 많았다. 그럼에도 나를 포함한 팀은 고객이 열광할 만한 힌트를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벅차했다. 깊은 땅굴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한 느낌이었지만, 나는 의도적으로 이 결과를 계속해서 의심했다. 회사에 너무나도 중요한 결정이었기에 조금이라도 틀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검증하기를 반복한 결과, 우리는 가격 파괴가 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에 점점 확신을 얻었다. 그 과정에서 모든 팀원들과 방향성에 대한 건강한 의견을 나눈 뒤, 우리는 결국 전 제품의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추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와이즐리의 모든 제품의 가격 정책에 대한 첫 번째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이에 입각하여 모든 제품의 새 가격을 설정하는 것으로 가격파괴 스쿼드를 마무리지었다.
가격 정책서를 마무리 하던 날 밤, 이런 생각이 들며 등골이 서늘해졌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른 거지?”
가격파괴의 결말은 아직 모른다. 무조건 성공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잘되게 만들 생각이다. 짧고 굵었던 3개월 반 동안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는 임팩트를 상상하며 설레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다. 근데 가만... 이렇게 쭉 돌이켜보니, 물론 아직도 부족한 게 너무나 많은 초년생이지만, 생 초짜 신입이 이 정도면 꽤 많이 큰 것 같다! (토닥토닥)
글을 마치며
와이즐리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샴푸 성분에 대한 지식도 아니고, 고객을 인터뷰하는 방법론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업무를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좋은 기획자는 기획자의 마인드를 버릴 줄 아는 사람, 즉 고객의 입장에 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 3년 동안 짧게나마 배웠다.
고객으로 빙의하는 것은 늘 쉽지 않다. 그러나 노력하다 보면 가끔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내가 하려던 업무가 관성적으로 그냥 해야될 것 같아서 하려던 것이었구나, 진짜 고객이 필요한 건 이게 아니구나.’ 그러다 보면 많은 것을 덜어내게 되고, 진짜 고객에게 필요한 것에 집중하게 된다.
고객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태도. 이것만큼은 어느 곳에서든 가장 중요한 역량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가장 올바른 시기에 가장 올바른 곳에서 배워가고 있다고 자부한다.
프로덕트 매니저(PM)는 와이즐리의 mini-CEO입니다. 와이즐리에서 진행되는 주요 사업계획을 최전선에서 직접 리드하며, 회사의 목표 달성에 도움되는 모든 일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시장을 혁신하고 싶은 분께서는 아래 채용공고를 꼭 확인해주세요. 주니어 PM, 시니어 Lead PM 모두 채용 중입니다.